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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봉황문’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현재가 중요해 2022. 12. 28.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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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화사 봉황문’ 문화재청이 보물로 지정... 

28일 문화재청이 보물로 ‘대구 동화사 봉황문’ 등 일주문 보물로 지정됐다. 지난 10월 30일 대구 동구는 문화재청이 ‘대구 동화사 봉황문’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동화사 봉황문이 위치한 동화사는 신라시대에 창건(極達和尙 또는 心地王師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봉황문으로 불리는 일주문은 조선후기 1633년(선조 11년)에 최초로 건립됐으며 봉황문 앞쪽에는 ‘팔공산동화사봉황문(八公山桐華寺鳳凰門)’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찰 일주문은 사찰이 시작되는 영역을 표시하는 정문으로 기둥만 일렬로 서있는 독특한 형식의 문이다. 대구 동화사 봉황문은 지역적으로 계통이 비슷한 교두형 공포장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일주문 축부와 구별되는 독특한 축부를 가지고 있다.

 

동화사 봉황문

 

신라 소지왕 15년(493년)에 극달 화상(極達和尙)이 유가사(瑜伽寺)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것을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 심지조사(心地祖師)가 중창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동화사라는 이름은 중창할 당시, 겨울인데도 오동나무가 꽃을 피운 것을 보고 상서로운 징조로 여긴 심지조사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삼국유사(13세기)에는 진표(眞表)로부터 불골간자를 이어받은 영심(永深)이 다시 심지조사에게 간자 두 개를 전했고, 심지조사가 그것을 봉안할 땅을 찾고자, 중악(中岳)의 두 신과 함께 산꼭대기에 올라가 서쪽을 향해 던지니 간자가 곧 바람에 날려 날아갔고, 간자가 떨어진 곳이 동화사 참당(籤堂)의 북쪽에 있는 작은 우물이었다. 그리고 심지조사는 그곳에 강당을 지어 간자를 봉안했다고 한다.

팔공산 동화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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