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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스님 5

'청담'스님 마음 중에 "올바른 생사관生死觀"

'청담'스님 마음 중에 "올바른 생사관生死觀" 올바른 생사관生死觀. 인간의 애착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생生에 대한 애착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옷을 입는 것이 살기 위한 행동이며 또한 농사를 짓고 장사를 하며 노동을 하는 것이 모두 먹고 입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부모의 몸에서 떨어져 나올 때부터 삶을 영위하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생에 대한 애착은 욕망과 함께 생기는 것이므로 이왕 생을 누릴 바에는 더욱 잘 살고 보다 오랫동안 살기를 기도하게 된다. 남보다 잘 살려는 애착과 욕망 때문에 인간 사회는 서로 반목과 질시를 따르게 되고 타락과 패륜이 계속된다. 물론 잘 살려는 욕망이 선의의 경쟁으로 나타날 때는 사회의 질서와 도덕이 확립되는 가운데 사회의 발전이 있을 것..

'청담'스님 마음 중 "마음의 눈을 뜨고" 제2편

'청담'스님 마음 중 "마음의 눈을 뜨고" 제2편 그런데 생각은 그때 그때 환경에 따라서 추우면 춥다 더우면 덥다고 느낍니다. 생각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만, 추우면 추운지 알고, 더우면 더운 줄 아는 이 마음은 불변의 나입니다. 생사의 변천이 없고 질량이 변화가 있을 수 없는 이 나는 모든 지식의 주체인데, 이 마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가지고 큰 것은 크다. 작은 것은 작다고 하는 것입니다. 육신도 마음이 만든 피조물被造物인데 중생들이 육신을 주인으로 마음을 육신의 종으로 삼아서 주객을 뒤엎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이 육신이 죽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을 방법이 없다.’ 이렇게 갈파하셨습니다. 상전인 마음이 육체의 종 노릇하는 것을 우리는 억울하게 생각하고, 불교신앙으로..

'청담'스님 마음 중에서 "마음의 눈을 뜨고" 제1편

'청담'스님 마음 중에서 "마음의 눈을 뜨고" 제1편 불교의 참 모습에 대한 안목을 차차 열어 주면 아무리 유물주의자고, 아무리 히피족이라도 불교에 대한 취미를 붙이게 됩니다. 불교에 대한 취미는 곧 자기에 대한 취미로 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我라고 하는 이 인생은 밥만 먹고 똥이나 싸고, 늙고 병들고 죽어서 썩어 없어지는 존재인 줄 알았더니, 참 나, 진아眞我는 그것이 아니구나! 나의 참 면목은 마음이로구나!’ 이렇게 깨우쳐집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물질도 아니고, 허공도 아닌 게 마음이라고 하면 어떻게 늙어 죽을 수가 있고, 불에 탈 수가 있겠습니까? 이 몸뚱이나 현상계는 모두 다 자기 꿈인테, 그 꿈 속에서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겠습니까? 쇠망치로 두들겨도 부서질 것도 없고, 불에 넣어도 탈..

'청담스님' 마음 중에서 "내 생명生命은 우주宇宙의 모든 것"

'청담스님' 마음 중에서 "내 생명生命은 우주宇宙의 모든 것" 내 생명生命은 우주宇宙의 모든 것. 사람은 오직 살고만 싶어 할지언정 죽고 싶어 하지는 아니한다. 왜? 살고싶어 할 줄 아는 이 생명은 산 것이기 때문이다. 태초 이전부터 그렇고 차원 이전부터 이렇듯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저 영원히 죽어있는 허공이나 물질과는 정말로 좋은 대조적인 것이다. 저 허공이 영원토록 물질이 될 수 없듯이 물질 또한 허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꾸어질 수 없는 영원불변의 원리이듯이 저 언제인가 당초부터 죽어 서 있는 무기물질이나 허공이 이렇게 생생하게 생명으로 변화할 수 없는 것이다. 여하한 상태에 있어서라도 그럴 것이다. 산 것은 본래부터 산 것이기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요 또한 미래가 다 할지라도 ..

'청담'스님 불교佛敎가 현세現世에서 갖는 의미意味 "마음"

'청담'스님 불교佛敎가 현세現世에서 갖는 의미意味 "마음" 불교佛敎가 현세現世에서 갖는 의미意味. 효봉이 모든 것을 군더더기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속에서 말로 표현된 모든 것이 군더더기란 뜻 보다는 그분의 생애에서 모든 것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법기암法起庵 토굴에서의 결사적인 정진 끝에 오도悟道한 이후로 그분은 한국불교의 통합과 불교의 전파를 위해서 몸을 바쳤고, 그리하여 그분은 63년 4월 11일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宗正으로 추대되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개인의 길에서 종정이라든가 전파는 거치장스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의 길에서는 언제나 정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함께 세상을 태어났다는 인연때문에 사해대중四海大衆들을 깨우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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