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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 세종대왕 애민사상

현재가 중요해 2023. 6. 2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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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 세종대왕 애민사상으로 만든 글자

한글은 세종대왕의 애민 사상이 깃든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이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여행 작가 '존 맨(John Man)'은 그의 책 "The Mongol Empire: A New History"에서 한글에 대해 썼습니다. 한글은 인류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입니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백성을 위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그는 그것을 달성했습니다. 

 

한글은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이며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문자이며 "한국 문화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그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발명한 과정과 한글이 한국어를 표기하는 데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썼습니다. '존 맨'은 또한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문자 중 하나라고" 믿었습니다.

 

미국의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Robert Ramsey)'는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다"고 칭찬하였으며, 영국의 저술가 '존 맨'도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글의 창제원리를 담고 있는 '훈민정음해례본'은 국보 제70호로써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한글(韓㐎 Hangeul), 조선글(朝鮮㐎, Choson'gul) 한국어의 공식문자로서, 세종이 한국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창제한 문자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20세기 초반 이후 달리 이르는 명칭이다. 한글은 본래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로 훈민정음이라 칭하지만, 1910년대 초 주시경 선생 등 한글학자에 의해 '한글’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일컬어 이렇게 표현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신비한 문자이며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문자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평가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한글의 특징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역사교육을 통해 세종대왕이 문자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백성들을 불쌍하게 여겨 우리나라 고유의 문자, 한글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만들기 위해 먼저 궁중에 정음청을 설치하고 정인지,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에게 이를 연구하게 하여 1443년에 한글을 창제했다.

이후 3년간 한자가 아닌 새로 만들어진 우리 글로 용비어천가 등을 지어 스스로 사용의 모범을 보인 뒤 1446년에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글을 백성에게 선보였다.

 

한글의 특징은 창제한 사람이 있으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창제의 원리를 갖고 있는 문자입니다.  과학적인 표음문자라는 점입니다.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됐습니다. 해례본이란 원리를 풀어낸다는 의미인데요. 사람의 발성 기관을 본떠 문자를 만들었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외국의 언어학자들은 한시간만 공부하면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는 문자"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애민사상(愛民思想)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아야 하며 미래의 한국이 세계 최고 국가 가 되면 한글은 세계 어느 나라든지 배우게 될 것이다.  그 징조가 구글 바드는 한글부터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 국민이 한글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야 "애국"을 하는 것이다. 


뉴스플러스는 2016.10.11 한글 창제, 진짜 산파 누구였나?  불교계에서는 '신미 대사'가 한자 뿐 아니라 몽골 팔사 문자와 티베트어, 범어 등 주변 6개 나라의 언어와 문자에도 능통해 한글 창제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대왕이 아무리 영명했더라도 한글을 만드는 데는 언어학과 자학, 음성학, 기호학 분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신미 대사를 비롯한 비선라인에 있는 연구자들은 집현전이 아니라 신미 대사가 주석했던 법주사 복천암 등 비밀한 곳에서 세종대왕이 부여한 비밀 프로젝트 즉 한글 창제 연구를 수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대왕은 죽기 몇 달 전 신미대사를 침실로 불러 신하로서가 아니라 스승을 대하는 예로 신미대사를 접견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신미대사가 주석하던 법주사 복천암 불사를 후원하고 미리 준비한 법호를 내린다. 당시 내린 법호는 '선교종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다.

이 법호를 보면 신미 대사의 스님으로서의 높은 법력과 도의 경지를 칭송하면서, 대중적 공적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하는 문구도 보인다.  바로  우국이세다  즉 나라를 돕고 세상을 이롭게 했다 는 것인데,  그것은 한글 창제에 기여한 공로를 높이 받든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한글이 만들어질 때 사대부의 반대는 극심했다고 합니다. 기득권을 지키고 싶어 하는 세력들의 명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세종대왕 혼자 만들었는지 집현적 학자들과 함께 한 것인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세종대왕의 애민 사상입니다. 심지어 한글이 만들어질 당시 세종대왕은 시각 장애를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종실록에는 내가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 어두운 곳 지팡이가 아니고 걷기에 어려웠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어쩌면 왜 글자를 만들어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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