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 스님 칠장사 화재로 죽음과 상원사 '한암' 스님의 죽음의 비교
경기도 안성 칠장사 화재로 '자승' 전 총무원장의 죽음을 보면서 같은 스님인데 상원사 한암스님의 죽음의 미학과 너무나 다르다. 칠장사 화재에 세분의 스님은 피하고 자승 스님 혼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화재가 나는 줄도 모르고 돌아가셨을까?
같은 스님이라는 존칭을 신도로부터 받지만 죽음은 너무나 다른 모습의 스님의 죽음이다. 선사로부터 ‘삼킬 탄(呑)’ ‘빌 허(虛)’라는 법명 ‘탄허’를 하사한 한암스님은 탄허스님께 탄허(呑虛)라는 법명을 주신 분이시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게릴라군의 거점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월정사에 불을 질러 태운 국군이 상원사까지 태워 없애려 했을 때, 승려들에게 절을 불태워야 하니 하산하라고 권하는 군인들 앞에서 가사를 갖추어 입고 법당에 정좌해 "내 몸을 함께 태워 부처께 공양하겠다"며 하산을 거부, 군인들이 하는 수 없이 절의 모든 문짝을 떼어 쌓아 놓고 불을 질러 연기를 내어서 절이 불타는 것처럼 보이게 한 뒤 철수했고, 상원사는 불타지 않고 보존될 수 있었다.
선우휘의 소설 상원사는 이 일을 다룬 소설이다.
한암(漢巖) 선사님은 불자들은 한암 스님으로 통한다. 방중원(方重遠 1876년~1951년)은 대한민국의 승려이다. 법호는 한암(漢巖)이며, 흔히 방한암선사로 불리며, 근세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승려로 한국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22세에 금강산 장안사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했다. 성주 청암사 수도암에서 경허성우의 설법을 들었고, 30세가 되던 1905년에는 양산 통도사 내원선원의 관실이 되었다. 1910년에 맹산 우두암에서 수도했고, 개오의 경지에 들었다. 금강산 지장암, 서울의 봉은사를 돌다가 50세 때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한번도 동구 밖을 나가지 않았다.
1951년 가벼운 병을 얻은 지 1주일 만에 76세로 입적했다.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신 뒤 가사 장삼을 정제하고 선상에 단정히 앉아 참선하는 듯이 숨을 거두었다.
소설 상원사를 집필한 선우휘 씨가 우연히 상원사를 찾았는데 스님 혼자 홀로 선상에서 단정히 앉아서 죽음을 맞이한 것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죽음을 조용헌 씨는 죽음의 미학으로 표현했다.
같은 스님의 존칭을 받지만 죽음은 너무나 다르고 허망하게 본의 아니게 화제에 몸을 공양한 자승 스님과 단정히 선상에 앉으신 한암 스님의 입적은 너무나 큰 차이이다.
이 모든 것의 차이는 신도의 생각의 차이와 스님 자신들이 살아온 업보에 대한 결과로 각자 생각하면 정답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자승 스님은 자신이 화재로 죽을 줄 알고 유언을 쓴 것인지...? 유언 2장이 있다는 뉴스는 무슨 뜬금없는 유언장...? 스님이 무엇을 그렇게 남겨야 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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