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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 옆에 모셔진 한 '고 김영환 군인의 위패'

현재가 중요해 2022. 11. 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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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팔만대장경' 옆에 모셔진 한 '고 김영환 군인의 위패'

합천 해인사 일주문을 향해 오르다 보면 성철스님의 사리탑이 보이기 전 오른편에 가로로 세워진 사각형의 비석을 볼 수 있다. 스님이 아니라, 어느 장군의 공적비다. 해인사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비석를 세웠다. 해인사는 불타고 있는가? 팔만대장경 봉안 장경각 옆의 위패 해인사 팔만대장경 옆에 모셔진 한 군인의 위패 © 제공: 한국일보 ▶ 경남 합천군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된 팔만대장경. 작은 사진 속 인물은 6·25 당시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한 고 김영환 공군장군. 

 

연합뉴스 ▶ 한국전쟁 당시 전국의 규모 있는 사찰은 총 969곳이었다. 그런데 이 중 약 25%인 180곳이 전쟁 과정에서 소각 및 파괴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다수가 아군에 의한 만행이었다는 점이다. 산사는 북한군의 거점이 될 수 있으므로 야만적인 파괴가 단행된 것이다. 1951년 해인사 역시 폭탄 투하를 통해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다. 이때 공중 폭격의 책임자였던 김영환 대령은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단독으로 해인사 폭격을 중지한다. 당시 김 대령은 이승만의 경무대로부터 "해인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무전을 받기도 했다. 전쟁 중 대통령 직속의 경무대까지 관여된 명령에 불복한다는 것은, 대장부의 심장과 문화적인 강력한 확신이 없었다면 단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옆에 모셔진 김영환 군인의 위패

 

6·25 때 폭격 거부했던 김영환 장군 더 큰 정의 위해 원칙 버린 아름다움... 제목, '해인사는 불타고 있는가?'. 장경판전과 팔만대장경은 초특급 국보이자, 유네스코 문화유산과 기록유산이라는 2관왕이다. 그 곳에 모셔진 돌아가신 고 김영환 장군의 위패

팔만대장경 봉안 장경각

 

실제로 김영환은 군법회의에 불려 나갔을 때,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철수했다"라고 당당한 소신을 천명했다. 훗날 우리 정부는 김영환 장군에게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구한 공로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당시 김영환은 절체절명의 해인사를 구한 대신, 자신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봉착했었다. 만일 김영환이 죽음을 불사하고 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니 인류는 불교를 넘어 최고 목판 인쇄술의 결정체를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 김영환 장군의 위패가 해인사 장경판전 안의 양지바른 곳에 봉안되어 있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구한 은혜를 사찰에서는 최고의 예우로 갚고 있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항명하며 문화유산을 지켜낸 진정한 군인, 그리고 이 은혜를 갚기 위해 불교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최고의 성보인 팔만대장경 옆에 위패를 모신 해인사 스님들. 이들은 모두 자랑스러운 영웅이 아닐 수 없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해인사는 매년 김영환 장군을 기리는 호국추모제를 열고 있다. 이 제의는 해인사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며, 거대한 아름다움의 향연으로 시대를 흐르며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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