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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아버지들 신학으로서 기독교의 초기 설계자들은 누구인가?

현재가 중요해 2022. 11. 19.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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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초기 설계자들은 누구인가? 신학으로서 교회의 아버지들

초기 기독교의 신앙과 실천의 진짜 역사는 종종 성경과 예수라는 신비로운 장막 뒤에 숨겨져있다. 그러나 진실은 공동체 시대의 초기 수세기 동안 신학과 권위로서, 기독교 창조에 없어서는 안 될 공헌을 한 많은 개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초기 교회의 아버지들로 알려져 있고, 그들 모두가 일반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의 진정한 설계자들이다.

 

로마의 클레멘스 : 첫 번째 사도의 아버지는 35년에 태어난 교황 클레멘스 1세였다. 클레멘스는 사도 베드로에 의해 로마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 : 사도 요한의 제자인 안티오키아의 이그나티우스는 짐승들에게 먹잇감이 된 기독교의 초기 순교자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의 역사와 기독교 주교들의 적절한 의무에 대한 광범위하고 필수적인 저술로 유명하다.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프 :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제자로 알려진 폴리카르프는 서기 155년에 순교할 때까지 기독교 복음과 전통의 헌신적인 교사였다. 처음에 그는 화형을 당했지만, 그 불은 그를 태우지 못했다. 그의 몸이 불타기를 거부하자 폴리카프는 그 뒤로 수없이 창에 찔렸는데, 주위의 불길이 꺼질 정도로 피를 많이 흘린 후에도 폴리카프는 죽지 않았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 : 마지막 사도 교부인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60년경에 태어났고 130년경까지 살았다고 믿는다. 그의 동시대 사람들은 그를 사도 요한의 "경청자"로 묘사했다. 파피아스의 업적은 다음 세대의 기독교인들에게 표준 복음서를 보존하고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라틴 교부들 : 교회의 박사들이 교회 교부들의 상위 계층으로 간주되는 반면, 기독교 신앙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많은 다른 집단들과 하위 집단들이 있다. 현대 가톨릭교회에 가장 잘 알려진 사람들은 라틴어로 글을 쓴 사람들이며, 라틴 교부들이라고도 한다.

 

 

테르툴리아누스 : 테르툴리아누스는 서기 155년경에 태어난 카르타고의 신학자로, 이단자로 분류된 후 성인이 되는 것이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구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라틴어로 다작한 작가이자 번역가였으며, 흔히 라틴 교회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카르타고의 키프리아누스 : 카르타고의 성 키프리아누스는 이교도로 태어났지만 기독교로 개종하고 서기 249년에 주교가 되었다. 키프로스는 초기에 물 세례를 지지했으며, 그들이 구원의 길로 가는 유일한 합법적인 출발이라고 가르쳤다.

 

푸아티에의 힐라리 : 4세기 초에 태어난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는 주류 기독교의 확고한 수호자였으며, 그 당시 이단으로 간주되었던 기독교의 아리우스파에 대한 그의 반대 때문에 종종 아리우스파의 망치라고 불렸다.

 

다마소 교황 1세 : 다마소의 재위 기간은 서기 366년부터 서기 384년까지이다. 그는 교회의 통합에 깊이 헌신했고 다른 지역들 사이의 분열을 막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 기독교를 철학으로 취급한 최초의 신학자 중 한 명인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은 기독교 신학에 2,000가지 이상의 사상을 기여했다. 그의 연구는 기독교 신학의 초기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비야의 이시도르 : 최초의 사도들의 시대가 지나고 수세기가 지난 후에, 세비야의 이시도르는 암흑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고대 세계의 마지막 학자"로 여겨졌다. 세비야의 대주교로서 이시도르는 또한 많은 서고트 왕들과 지도자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는 데 책임이 있었다.

 

사막의 교부들 : 훨씬 덜 알려져 있지만, 라틴 교부들 못지 않게 중요한 사람들은 사막 교부들로 알려진 금욕주의자들이다. 이 초기의 난해한 신학자들은 이집트의 사막에서 수도원 생활을 했으며, 현대 기독교 수도원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테바이의 바울 : 사막에 발을 들여놓은 최초의 신학자는 테바이의 바울로, 제1의 은둔자 바울로도 알려져 있다. 서기 227년에 태어난 그는 16세 때부터 113세에 죽기 직전까지 사막에서 엄격한 금욕의 고독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는 죽기 불과 몇 주 전에 앤서니 대제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그는 바울에게서 사막의 수도원주의를 배웠다.

 

앤토니우스 대제 : 서기 251년경에 태어나 모든 수도승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안토니우스 대제는 바울의 전철을 밟았을 뿐만 아니라 사막 수도원주의를 대중적인 현상으로 만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사막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그는 많은 초자연적이고 신성하지 않은 유혹에 직면했고 정복했다고 한다.

 

파코미우스 : 결국 파코미우스는 안토니우스의 뒤를 따르기로 선택했고, 신이 꿈에서 그에게 와서 사막 수도원주의에 빠르게 접근하는 새로운 신자들을 위해 수도원을 지으라고 말할 때까지 고독하고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파코미우스는 공동 수도원주의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크리스천 클래식스 에테르 도서관) (브리태니커) (New Ad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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