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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들의 영원한 '엄청난 안식처' 최고의 무덤에 잠들다

현재가 중요해 2023. 7. 2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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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들의 영원한 '엄청난 안식처' 최고의 무덤에 잠들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명예를 담은 영원한 안식처의 중요성은 역사상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세계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인 주제였다. 전사자들의 무덤, 묘지, 매장지는 항상 그들의 삶의 지위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였으며, 역사를 통틀어 많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은 그 시대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꿈꿀 수 있던 것보다 더 좋고 더 사치스러운 환경에 안치되었다. 건축의 위상과 위업을 겸하는 이 공간들은 눈요기에 진수성찬이다. 출처: (Touropia) (Britannica) (Funeral Guide)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무덤 : 프랑스 혁명의 지도자이자 프랑스의 초대 황제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레 인발리데스로 알려진 거대한 묘소와 박물관 단지에 묻혔다. 나폴레옹은 영국이 지배하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가 1821년 사망했다. 루이 필리프 1세가 요청했지만 1840년까지 그의 유해는 레 인발리데스로 옮겨지지 않았다. 레 인발리데스 안에 있는 나폴레옹의 기념비는 전설적인 이탈리아 건축가 루이 비스콘티에 의해 설계되고 대부분 지어졌다.

 

파두아 성 안토니우스 대성당 :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우스는 이탈리아 파두아의 수호성인이자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일생 동안 13번의 기적을 행한 것으로 생각되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성 안토니우스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물건을 돌려받게 된다고 한다.

 

이 성인는 파두아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 성당에 묻혔다. 대성당의 건축은 성인이 죽은 지 1년 후인 1232년까지 시작되지 않았고, 1310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그때까지, 그의 시신은 인근 산타 마리아 교회에 보관되었다. 그의 시신이 두 교회 사이로 옮겨졌을 때, 그의 혀가 믿을 수 없이 좋은 상태로 발견되었고, 현재 바실리카 내부에 전시되어 있다.

 

쑨얏센 선생 묘소 : 현대 중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쑨원은 중국을 군주제 시대에서 공화국 시대로 이끈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혁명이 실패한 후 일생의 많은 부분을 망명 생활로 보냈지만, 그가 사망할 당시 그는 매우 명예로운 사람이었고, 그를 숭배하던 사람들은 그의 매장지를 보장했다.

 

난징의 보라색 산에 묻힌 쑨원의 묘소는 건축가 루옌지가 설계했다. 긴 계단은 고대 황제들의 매장 건물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설계된 주 무덤으로 산을 이끈다. 위에서 보면 묘소는 종 모양을 닮았다.

 

하드리아누스의 영묘 : 5대 선황제 중 한 명으로 알려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117년부터 138년까지 거의 21년 동안 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로마 중앙에 거대한 묘소가 세워졌는데, 그는 여전히 아내와 양자와 함께 묻혔다.

 

이 거대한 원형 단지는 여전히 이탈리아의 수도에 서 있으며 하드리아누스 사후에도 오랫동안 도시의 역사에서 활동적으로 남아있다. 이 무덤은 14세기에 성으로 개조되었고, 1527년 로마 포위전 때 교황의 요새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은 박물관으로 '카스텔 산트안젤로'라고 불린다.

 

타지 마할 : 타지마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건축물 중 하나이며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이다. 1632년에서 1653년까지 21년에 걸쳐 지어졌으며, 무굴 지도자 샤 자한에 의해 그의 아내 뭄타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의뢰되었다.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타지마할을 "시간의 뺨에 떨어지는 눈물"이라고 묘사했고, 대부분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 묘소는 시대를 초월한 무굴 건축의 장엄함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이다

 

진나라 제1대 황제릉 : 진시황은 중국의 모든 지역과 국가를 하나의 정부 기구로 통합한 최초의 지도자였고, 황제로서의 그의 통치 기간은 약 15년이었지만, 이에 대한 그의 영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 황제는 또한 자신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왕릉을 지었다. 중국 서부 산시성의 리산 기슭에 위치한 52평방킬로미터의 거대한 묘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라코타 군대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기자의 대 피라미드 : 자의 피라미드는 지구상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랜드마크이다. 그들은 3대에 걸친 이집트 파라오, 즉 쿠푸 왕, 카프레 왕(사진), 멘카우레 왕을 모시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아직도 이 거대한 피라미드들이 정확히 어떻게 지어졌는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은 그것들이 완성되기까지 약 27년이 걸렸다는 것에 동의한다. 거의 4,000년 동안 기자의 피라미드는 1887년 에펠탑에 의해 왕좌에서 쫓겨날 때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물이었다.

 

제너럴 그랜트 국립기념관 : 율리시스 에스 그랜트는 미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첫 번째 명성은 남북 전쟁 동안 북군을 승리로 이끈 그랜트 장군이었다. 후에, 그는 미국의 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랜트는 뉴욕 맨하탄 섬의 서쪽 위쪽에 있는 멋진 돔 형태의 묘소에 묻혔다. 이 묘소의 설계권을 놓고 길고도 오래 끌은 경쟁이 열렸고, 우승한 건축가는 존 에이치 던컨이었다.

 

이맘 후세인 사원 : 이맘 후세인의 무덤은 시아파 이슬람교도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 하나이다. 이맘 후세인은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신성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둘째 손자였다. 그의 무덤은 이라크 도시 카르발라에 위치해 있다.

 

이맘 후세인의 무덤은 65개의 방과 정원으로 이루어진 널찍한 단지의 중심에 있으며, 사원의 상징인 황금 돔 바로 아래에 있다. 카르발라는 후세인의 출생지는 아니지만, 그가 목숨을 잃은 카르발라 전투의 현장이다.

 

레닌의 묘소 : 공산주의 철학자이자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은 52세의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사망했다.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묘지에 묻히는 것을 선호했겠지만, 그의 후임자인 이오시프 스탈린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1924년 레닌이 죽은 후, 스탈린은 그의 시신을 모스크바로 옮겨 방부처리를 했다. 스탈린은 또한 소련 지도자를 위해 즉시 무덤을 만들 것을 명령했고, 최초의 나무 무덤은 며칠 만에 지어졌다. 1924년 8월, 레닌이 사망한 지 8개월 후, 나무로 만든 무덤 주변에 더 큰 묘소가 세워졌고, 그곳에서 레닌의 보존된 시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시되고 있다.

 

자한기르의 무덤 : 무굴 제국의 제4대 황제(재위: 1605년 ~ 1627년)는 무굴 제국의 자한기르 황제이다. 그는 예술, 특히 건축에 대한 기득권을 가진 공정하고 자유로운 통치자로 알려져 있다.

 

자한기르가 죽은 지 10년 후, 타지마할을 책임지고 있던 그의 아들 샤 자한은 그의 아버지를 위해 아름답고 널찍한 묘지를 짓도록 명령했다. 자한기르의 무덤은 파키스탄 라호르에 위치해 있으며, 정원과 광장의 거대한 복합물로 둘러싸여 있다.

 

마오쩌둥의 묘소 : 중국 공산당의 주석이자 중국 문화 혁명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1976년에 사망했고, 레닌의 길을 따라 갔다. 마오 주석은 자신이 죽으면 화장하고 싶다고 분명히 말했지만, 그의 소원은 즉시 무시되었고, 그 역시 방부처리되어 전시되었다.

 

마오쩌둥의 묘소는 베이징에 위치해 있으며 짓는 데 1년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건물은 공산당 치하의 통합의 상징으로 전국에서 모인 재료들로 만들어졌으며, 마오쩌둥의 추종자들이 제시한 자발적인 노동력으로 크게 지어졌다.

 

판테온 : 파리의 판테온은 루이 15세의 요청으로, 이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 제네비에브에게 6세기부터 그녀의 이름으로 자리잡은 겸손한 교회보다 더 화려하고 헌신적인 건물을 바치기 위한 노력으로1758년에 지어졌다.

 

오늘날, 이것은 볼테르, 뒤마, 그리고 위고와 같은 상징적인 작가들을 포함하여, 프랑스에서 가장 존경 받는 시민들의 유해를 보관하고 있는 파리의 중심부에 있는 거대하고 우뚝 솟은 네크로폴리스다. 오직 프랑스의 최고 권위자만이 (오늘날 대통령은) 판테온에 묻히는 것을 승인할 수 있다.

 

키루스의 무덤 : 고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 사상 중 하나인 키루스 대왕은 기원전 559년부터 530년까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을 세우고 통치했다. 특정 시점에, 그는 그의 제국이 전 세계에 걸쳐 있다고 생각했고, 그 자신에게 우주의 왕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사치스러운 칭호는 확실히 사치스러운 무덤을 필요로 했다. 키루스의 무덤은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오늘날의 이란의 파사르가다에 세워졌다. 그것은 고대 건축의 위업으로 서 있으며, 그것의 영향은 전 세계의 많은 다른 무덤에서 볼 수 있다.

 

체 게바라 묘소 :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 기간 동안 쿠바에서 영향력 있는 혁명 저항 지도자였다. 그의 이름과 이미지는 이후 전 세계 운동에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비록 게바라의 유해는 그가 죽은 지 30년이 지나서야 발견되었지만, 1982년에 그를 기리기 위해 기념비가 세워졌다. 볼리비아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자, 유해는 즉시 쿠바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그의 이름으로 지어진 기념비 아래 영원히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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