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환경의 변화에 생각나는... '거지 성자' 독일인 페터 노이야르 씨
아주 오래 전에 출판된 '거지성자' 2022년 유난히 지구환경 재난을 보면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거지성자를 읽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책이다... 1940 독일 라인란트―팔츠주 출생. 1968 프랑스 사회변혁운동 참여. 10여년간 세계 방랑 끝 1980년 독일 쾰른 정착. 1999 11월 첫 방한. 2000 10월 두 번째 방한 이후 노이야르 씨는 지난 80년부터 독일 쾰른대 중앙도서관 호숫가 나무 아래서 자며 집, 돈, 여자가 없는 ‘3무(三無)’의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다.
그는 유럽을 휩쓸던 68혁명 당시 학생운동에 빠져 프랑스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 후 그는 불교에 심취해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그는 유기농산품 상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얻어 하루 한 끼 먹고, 하루 종일 장서 500만권의 쾰른대 도서관에 처박혀 독서하고 명상하는 것이 그의 일과이다. 닦지 않은 지 20년이 된 그의 이(齒)는 검게 변했고, 겨울에도 샌들만 신는 발바닥은 새카맣고 딱딱하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을 때는 언제나 결가부좌를 한다.
그의 삶은 독일인이 아닌 한국인에 의해 ‘발견’됐다. 80년대 독일에 유학한 한국 빠알리성전협회 대표 전재성 박사는 쾰른에서 그를 만난 후 그의 박학과 수행 방식에 감명받아 그는 지난 99년 "거지 성자"란 제목으로 노이야르의 생활을 책으로 써 출간했다. 20년간 무소유와 고행 실천. 불교 힌두교 이슬람 교 연구.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건너온 ‘거지성자’ 페터 노이야르. 집 없는 떠돌이 거지에게 성자란 칭호가 붙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가 한국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듣고 수소문한 지 보름. 그를 한국에 소개한 불교학자 전재성 씨와 함께 얼마 전 춘천 소양호 인근의 폐가(廢家)를 찾았을 때 그는 눈부시게 반짝이는 겨울 햇빛을 보며 명상에 잠겨 있었다. 동아일보 인물포커스▶ 명상을 깨뜨린 기자를 그는 어린애 같은 환한 미소와 합장으로 맞아주었다. “1999년 11월 실상사 도법스님의 초청으로 한국에 처음 와서 남도의 여러 사찰을 순례했을 때 아름다운 자연에 홀딱 반했습니다. 독일로 돌아가서도 섬진강과 동강 등 때 묻지 않은 한국의 산하가 눈에 밟혔습니다.
지리산에 계신 스님이 초청해 흔쾌히 한국행을 결심한 것입니다.” 그때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다. 겨울의 냉기를 머금은 바람에도 덕지덕지 기운 누더기 망토 하나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런 시선을 의식했는지 “12년째 입고 있다 보니 이게 옷인지 내 몸인지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다닥다닥 붙은 다락논 같다고 하지만 세상을 떠도는 내 삶 같아서 애착을 느낍니다.” 그는 호수 건너편을 바라보며 독백처럼 말을 이어갔다.
“아마 지리산만큼 아직 때 묻지 않은 곳은 없을 겁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강산을 한국인이 왜 소중히 여기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도 파괴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의 파괴가 모든 것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노이야르에게 한국에서의 계획을 묻자 “언제나 그렇듯 특별한 게 없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운명 아닙니까. 70년대에 10년간 프랑스 영국 그리스를 거쳐 인도 태국을 방랑했듯이 이번에는 한국의 하늘 아래에서 지내려 합니다. 프랑스 속담에 ‘아름다운 별빛 아래 잠을 잔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세 인도의 성자인 카비르는 ‘모든 자연이 나의 생명인데 내가 어찌 나를 해치겠는가’라는 말로 자연 속 삶의 즐거움을 노래했습니다.
독일 생활이 도심 한가운데 소나무 아래서 수행하는 것이었다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풀 먹다 굶어 죽은 사람’처럼 산나물과 열매로 수행할 계획입니다.” 그가 말한 ‘풀먹다 죽은 중국 사람’은 고사에 나오는 ‘백이숙제(伯夷叔齊)’였다.
노이야르가 채식과 생식으로 지낸 것은 20년이 넘는다. 부처의 가르침대로 살기로 결심한 이후 그는 지금까지 채소와 과일만을 먹고 지냈다. 그는 이를 닦지 않는다. 치석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이가 검게 변했다. “독일은 80년대 녹색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치약이 오히려 이를 상하게 한다는 말을 듣고 이 닦는 것을 중단했습니다. 이가 검은 내 모습을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으니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머리를 긁었다.
“노숙을 하다 보니 벼룩과 이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생명이 붙어 있는 것을 죽일 수도 없고 피를 공양하며 언젠가 녀석들이 떠나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4년 전에는 너무 물어대는 바람에 털이란 털을 모두 밀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덩달아 몸이 가려워지는 것 같았다. 무릎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지 한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어느새 해가 기울기 시작했는지 호수 위에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돈 없이, 집 없이, 여자 없이 살겠다’ 결심했다 그런데 한국에 와 뜻밖에 집이 생겨 고민이라고 농담을 했다. “부처께서는 집이 인간의 욕망과 얽매임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버리고 구도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슬람에도 집 없이 수행을 하는 ‘데르비쉬’의 전통이 있습니다. 집이 생긴 이후 인간은 서로 경계선을 쌓게 됐고 이 때문에 단절과 갈등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지요. 사람들은 집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평생 노예처럼 살아갑니다.
땅을 이불 삼고 하늘을 지붕 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음식을 먹기 위해 수저가 필요하지요. 그런데 수저가 있으면 그릇이 필요하고, 결국에는 식탁이 필요해집니다. 이렇듯 집은 욕망의 집합체입니다. ‘정신의 집’조차 거느리기 힘든데 거대한 고뇌의 덩어리인 ‘육신의 집’을 왜 짊어지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한겨울 눈밭을 다닐 때를 빼고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 탁발과 삭발을 하고 맨발로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서도 사찰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대 불교는 초기불교의 엄격함과 소박함을 잃었습니다. 음식은 너무 기름지고 향이 너무 진합니다. 배 부르고 등 따스한 곳에 진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수행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데 현대의 사찰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 곳에 머무느니 차라리 별 아래 거지 생활이 더 행복합니다.” 한국인에게 ‘거지 성자’로 알려져 있다고 하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중국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에게 양나라 무제가 부처의 가르 침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지요. 달마는 한 마디로 ‘확연무성(廓然無聖)’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늘 아래 성스러운 것은 없다는 뜻입니다. 나를 성자라고 부르는 건 얼토당토않습니다. 나이 60이 넘었건만 아직도 너무 많은 잘못과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요즘 와서는 거지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나를 성자라 부르는 것은 나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 그가 묵고 있는 방이랄 것도 없는 폐가 안을 둘러봤다. 한 구석에 유교와 초기불교 경전 등 책 세 권과 노트 한 권 그리고 가끔 그를 찾아오는 지인이 갖다 준 귤과 사과를 담은 라면상자가 덩그랗게 놓여 있었다. 문을 나서는 기자에게 그는 중세 인도의 성자인 카비르의 시 한 구절을 읊어 주었다. “사자가 울부짖지 않고 새도 날지 않는 숲 속에서, 낮도 밤도 없는 숲 속에서 나는 홀로 황홀하게 지낸다네. 그대여, 욕망을 갖고 쓸모없는 일 서두르며 왜 지옥을 향해 치닫으려 하는가.” 누더기 한 장만으로 20년간 부처의 깨달음을 실천해온 그가 전해준 선물이었다. 만난사람=백경학기자 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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