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명의 소녀들을 죽인 것으로 알려진 "피의 백작 부인",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누구인가?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6세기 헝가리 왕국의 귀족 여성으로, "피의 백작 부인"이라는 악명 높은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600명 이상의 소녀들을 살해했다는 끔찍한 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바토리는 1560년 헝가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1575년에는 헝가리 귀족 페렌츠 나다스디와 결혼하여 5명의 자녀를 두었다. 결혼 생활 초반에는 평범한 귀족 부인으로 살아갔지만, 1590년대 초부터 점차 정신적인 문제와 잔인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바토리에 대한 잔혹 행위에 대한 소문은 1610년경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헝가리 의회는 바토리의 잔혹 행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고, 조사 결과 바토리가 수십 명의 소녀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피를 마셨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바토리는 1611년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바토리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하인들의 증언과 물증을 통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614년 바토리는 자신의 성 안에 감금된 채 사망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의 범죄는 잔혹성과 범위에 있어서 유럽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사건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녀의 범죄에 대한 정확한 동기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정신 질환, 권력에 대한 갈망, 영원한 젊음을 얻고자 하는 미신적인 믿음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 요약
초기 생애:
엘리자베스 바토리는 1560년 헝가리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잔인하고 공격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15세에 트란실바니아 공 페렌츠 나다스디와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엘리자베스는 잔인한 행동을 계속했으며, 하녀들과 농노들을 잔혹하게 학대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살인 행위:
1610년,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의 잔혹한 행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당시 헝가리 정부는 엘리자베스의 성에서 여러 명의 소녀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후 조사 결과, 엘리자베스는 수년 동안 수백 명의 소녀들을 살해하고 고문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문 행위: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은 소녀들을 굶겨 죽이고, 불로 지지고, 칼로 찌르고, 못으로 박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문했다. 또한, 뜨거운 철판으로 살을 굽거나, 바늘로 찔러 상처를 내는 등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 엘리자베스가 소녀들을 학대하는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영원한 젊음을 얻기 위해 소녀들의 피를 마셨다는 소문도 있다.
재판과 처벌: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의 잔혹한 행위는 헝가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녀는 곧 체포되었다. 1611년 엘리자베스는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600명 이상의 소녀들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귀족 신분으로 인해 사형을 피할 수 있었고, 남은 생애를 성에 감금되어 보냈다.
사후: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은 1614년 감옥에서 사망했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도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는 전설과 미신으로 퍼져나갔으며, 그녀는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살인마 중 한 명으로 남아 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의 이야기는 잔혹성과 악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인간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바토리의 이야기는 여러 소설, 영화, 드라마 등에 소재로 활용되어 왔으며, 헝가리 역사상 가장 어두운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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