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목을 잘라 단목으로 쓰는 것이 아까워... 무형문화재 자격 박탈…
대목 신응수 광화문 복원 금강송(金剛松) 때문에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 보유자로 인정된 후 31년 만에 자격을 상실하게 됐다. 안타까운 뉴스이다. ▶ 신응수씨는 지난 2008년 3월 서울 종로구의 광화문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문화재청이 조달한 최고 품질의 소나무(금강송) 26그루 중 4그루를 자신의 목재 창고에 보관한 혐의로 6년 후인 2014년 경찰 조사를 받고, 2016년에 약식 기소됐었다. 신응수 씨가 임의로 보관한 이 4그루의 나무는 궁궐 복원 공사 등에 사용되는 직경 70㎝의 대경목(大莖木)이었다. 최초 경찰 조사 과정에서 신씨는 “목재의 재질이 좋지 않아 버리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검찰은 신씨가 보관한 소나무가 좋은 환경에서 양질의 상태로 보관돼온 사실을 확인한 후 그를 재차 심문했다. 신씨는 결국 검찰 조사에서 “구하기 어려운 대경목을 잘라 단목으로 쓰는 것이 아까워 궁궐 기둥 복원 등 다른 적합한 작업에 사용하기 위해 빼돌렸다”고 자백했다.■ 자격은 잃었지만 목수 신응수의 실력은... 대목장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일이다.
신응수씨의 답변을 듣고 참 안타깝다. 우리가 그동안 대목 신응수를 아주 괜찮은 대목장으로 인정했는데 그는 처음부터 보고를 하고 했으면 달라진 것인가? 그런 귀한 나무를... 한국인과 가장 친숙한 나무를 꼽으라면 단연 소나무다. 조상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생솔가지를 꽂은 금줄을 쳤고, 소나무로 만든 가구나 도구를 사용했으며 죽어서도 소나무로 만든 관에 묻혔다. 수많은 문학과 미술 작품, 전설 등에도 소나무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의 모습은 올곧은 선비의 기개를 상징하기도 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등장한다. 한국의 소나무 중에서도 금강송(金剛松)은 균열이 적으며 아름다워서 최고급 목재로 여겨진다. 금강산에서부터 백두대간을 따라 강원도 강릉·삼척, 경북 울진·봉화·영덕 등에 자생하고 있다. 금강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이 붙었으며 지역에 따라 춘양목·황장목·안목송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최고급 목재로 여겨진 만큼 조선시대부터 국가가 직접 관리했으며, 궁궐이나 관청 등을 짓거나 국가 대사가 있을 때만 벌목했다.
19세기말 고종高宗(1852 ~ 1919)이 즉위하고 경복궁이 중건됐다. 그러나 당시의 공사전말을 기록한 도감의궤가 남아있지 않아 당시 동원됐던 궁궐목수의 실체는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상량문을 비롯한 편린片鱗의 기록과 목수 사이에서 내려오는 구전口傳을 통해 광화문 도편수 김수연金守淵과 근정전 도편수 김치영金致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경운궁 중화전 신축공사와 경운궁 중건공사는 대한제국大韓帝國(1897~1910) 시기에 마지막으로 시행됐던 궁궐공사였다. 1902년 완공된 경운궁 중화전 신축공사에서 부편수로 참여했던 홍순모洪淳謨는 이후 경운궁 중건공사(1904 ~ 1906) 당시 도편수의 직책에 올라 궁궐공사의 총책임을 맡았다. 구전에서 ‘홍편수’라 전해졌던 인물이 바로 홍순모이다.
한수준韓壽俊과 최백연崔伯淵은 홍순모와 함께 경운궁 공사에 참여한 목수였다. 한수준은 1901년 경운궁 진전 중건시 진연, 진찬에 사용되는 보계補階를 제작한 편수였으며 최백연은 1901년 경운궁 진전 중건에서 공답편수를 맡았고 1904년 경운궁 중건에서는 당가唐家편수로 활동했다. 최원식은 궁궐목수 홍순모, 한수준, 최백연의 뒤를 잇는 목수이다. 구전에 의하면 궁궐목수 최원식은 최백연의 조카로 1906년 경운궁 중화전 중건과 1917년 창덕궁 대조전 중건에 참여했다고 한다. 최원식의 제자 조원재(1903 ~ 1976)는 스승 최원식과 함께 조계사 및 봉원사 법당을 지었으며 동양건축사東洋建築社와 한도실업을 설립한 인물이다. 목수 조원재는 1956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고건축 수리공사였던 강진 무위사 수리공사를 진행했고 1962년에는 숭례문 해체 수리 공사에서 도편수를 맡았다.
조원재의 뒤를 잇는 목수는 이광규(1918 ~ 1985)이다. 이광규는 1962년 숭례문 해체수리공사에서 부편수를 맡은 이후 불국사와 남한산성 복원에서 도편수로 활약했으며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됐다. 신응수는 이광규를 계승해 우리나라 궁궐건축의 맥을 잇는 목수이다.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된 신응수는 1991년 경복궁 침전권역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지난 20년간 경복궁 복원에 매진해 왔다. 전통목조건축의 기법은 도제교육을 통해 기문技門 내에서 엄격히 관리, 전승되고 있다. 신응수는 스승으로부터 배웠던 궁궐건출의 기법과 수십 년 동안 궁궐수리 공사에서 터득한 기술을 정리해 제자들에게 전수해 오고 있다. 향후 궁궐목수의 계보는 신응수와 함께 궁궐건축 복원의 역사를 써내려온 문기현 부편수가 계승해 나갈 것이다. 출처 : 나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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