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여왕도 방문했던 곳 안동 봉정사...
경북 안동시 서후면 576m 높이의 천등산 아래에는 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사찰.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의성 고운사의 말사로 작고 아담한 절이지만 산사의 형태를 잘 갖춘 절로 오늘날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지어진 국보 제15호 극락전으로 유명하다. 대웅전은 국보 제311호로 지정된 것이다. 2018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중 하나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봉정사가 있다. 봉정사 북동쪽 암자인 영산암도 영화 <동승>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왜 영화촬영지로 각광받았는지 나름대로 보니 사찰 화려함보다 수수한 영남 고택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지난 6월 25일 안동의 유구한 사찰 봉정사로 떠났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을 이곳에 초대한것이다.
뉴스는 ▶ 봉정사는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서의문을 지나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좌회전해서 924번 지방도를 타자. 서후면을 지나 고갯길을 넘어 5분 정도 가다보면 삼거리가 하나 나오는데, 왼쪽으로 꺾어 5분 정도 가면 봉정사로 갈 수 있다. 안동의 대표 고찰에서 이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봉정사. 672년 능인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수차례 중수되어서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입구에 천등산봉정사라는 현판이 보이는 누각이 있는데, 봉정사의 이층 누각문인 만세루다. 입구에서 볼 때는 봉정사 내부의 신비함을 가려주는 역할을 하지만 누각에 올라가면 봉정사 아래의 풍경을 훤히 볼 수 있다.누각에 들어가니 웅장한 건물이 하나 보인다. 바로 석가모니 삼존상을 모신 대웅전이다. 그런데 다른 부속건물과 달리 세월의 흐름이 매우 느껴졌다. 무엇보다 건물 앞쪽에 툇마루가 눈에 띄었는데, 다른 건물에서 찾기 힘든 독특한 양식이다.건축양식은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으로 기둥머리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拱抱)로 가득한 다포양식 형태인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사찰 건축양식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1999년부터 2001년 초 이뤄진 해체보수공사 때 조선 세종 17년(1435)에 중창했다는 묵서명이 발견되었다. 중창한 것 그대로 오늘날까지 전해졌다면 무려 600년 가까운 세월동안 대웅전 기둥들이 저 커다란 팔작지붕을 지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2009년에 국보 제311호로 승격되었다.
대웅전 왼쪽에는 뭔가 특이하게 보이는 종무소가 있다. 종무소 자체가 보물 제448호인 봉정사 화엄강당이기 때문이다. 원래 승려들이 경전을 공부했던 곳으로 온돌방 구조를 갖췄다고 한다. 강당 역할을 했기 때문에 대웅전보다 기둥 크기가 작고 기둥머리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계열의 익공 양식으로 되어 있다. 1969년 해체 복원할 때 발견한 상량문에 의하면 선조 21년(1588)에 손질하여 고쳤다는 기록이 있다.화엄강당 왼편으로 가면 가운데 삼층석탑 뒤로 극락전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역시 대웅전에 비하면 주심포 양식으로 단출한 건물처럼 보이는데, 무려 고려시대 때부터 이어져 오는 국보 제15호 봉정사 극락전이다. 1972년 해체 수리했을 때 발견된 상량문이 하나 있었는데,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건물의 지붕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중수를 하려면 적어도 100~150년은 소요되기 때문에, 적어도 12~13세기에 세워진 건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런데 극락전을 보면 옆에 있는 대웅전보다 건물이 더 새 것처럼 보인다. 1972년 해체 수리한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복원되기 전에는 대웅전처럼 툇마루와 띠살창호문이 있었는데, 이를 판문과 격자창으로 바꿔 버렸다.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고려시대에 이런 양식이 없다는 근거로 바꿨다고 했는데, 2013년 주남철 고려대 명예교수가 고려시대 원형도 모른 채 중국풍으로 복원했다고 비판했다.나는 고건축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복원 전처럼 차라리 그대로 남기는 게 좋지 않았을까하고 조심스레 주장해본다. 그랬다면 빛이 바랜 기둥들과 벽면이 내게 800년 세월이 어땠는지를 말해주지 않았을까?
극락전 바로 왼쪽에는 승려가 기거하는 방으로 활용하는 고금당이 있다. 1969년 해체 복원 당시 상량문에 광해군 8년(1616)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네 건물을 전체적으로 보니 봉정사는 고려 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사찰의 건축사를 압축적으로 말해주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우화루를 지나 보니 역시 암자인지라 부처의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을 모시고, 좌우로 나한(부처)들이 포진해 있는 나한전과 전통 삼신신앙이 결합된 삼성각이 있다. 응진전과 삼청각 앞에는 양반 고택의 사랑방처럼 보이는 관심당과 송암당이 있다. 관심당과 송암당 방문 앞을 보면 대웅전처럼 툇마루가 있는데, 어찌 보면 툇마루가 봉정사를 상징하는 건축양식이 아닐까? 송암당이라는 이름 그대로 건물 오른편 앞에는 상당히 오래된 소나무와 바위가 있어서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오늘날 전해지는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 그리고 부속건물들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사찰 건축사를 그대로 압축해 놓은 느낌이다. 고려시대 주심포 양식의 극락전부터, 다포 양식의 조선시대 대웅전까지. 특히 대웅전의 낡은 모습은 다사다난한 600여 년의 세월을 나에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회 전반의 모든 일. 현재. 과거. 미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 레스보스섬. 폭염에 불타는 휴양지…위성으로 본 산불 (0) | 2022.07.26 |
---|---|
한국계 최초 ‘수학 노벨상’ 필즈상 허준이 교수가 아끼는 명품... (0) | 2022.07.25 |
'거짓말 정치'로 뜬 英 총리, 거짓말로 몰락 (0) | 2022.07.09 |
한국 수학자 최초 '필즈상' 허준이 교수 금의환향 (0) | 2022.07.08 |
전 세계 날씨…스페인은 가뭄, 호주는 홍수로 몸살 (0) | 2022.07.06 |